정신적힐링

관조의 눈<영안靈眼>

감이수통 2014. 3. 15. 19:52


관조의 눈은 무엇인가. 관조의 눈으로 인식되는 세계야말로 역설의 세계다. 사람들은 관조의 눈을 뜨고 그 세계를 보고 싶어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물론 감각의 눈만을 크게 키워온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변명도 없지는 않다. 그들은 관조의 눈을 뜨고 그 세계를 체험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영성에 대한 믿음의 삶이 현실 생활 속에서 공존하던 시절이 인류에게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감각의 눈, 이성의 눈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아지면서 관조의 눈은 점점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 세계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관조의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신비’ 아니면 ‘의심’으로 말이다. 그러나 관조의 눈을 뜬 사람들은 그 세계의 절대성을 확신한다. 윌버는 관조의 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의 본질은 오로지 관조의 눈과 이것에 의해 직접적으로 밝혀진 대상물들, 즉 그것의 초월성, 그것의 영적 자료, 영적 세계에 대한 확고한 사실들로만 밝혀질 수 있다. 또한 가장 심층적이며 가장 신비로운 절대/상대 문제는 오직 관조의 눈에 의해서만 해소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해답은 감각 영역이나 지적 영역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초월 영역에 놓여 있다”


요컨대 이 세상 본질에 대한 진정한 답은 관조의 눈을 떳을 때만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이 관조의 눈을 뜨는 방법은 바로 ‘명상’이나 수행등 동양의 정신수련법에 있다.


깨달음의 영역은 감가의 눈이나 이성의 눈을 통해 지각될 수 없는 영역이다. 삶을 살아가며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방법론을 모른채 단순히 머리로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영성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이미 그런 경향을 지닌 사람으로서 관념적 증명이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초월의 영역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관조의 실천을 수행해야한다”


윌버의 지적은 수행의 삶과 소원해진 현대인들 모두에게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웰빙의 삶과 스트레싀 해소등을 목적으로 수행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행의 본질적인 목적중의 하나가 영성을 체득하고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이다